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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폭풍 한가운데서 - 우리는 오늘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 David Wilkerson

hepsiba 2013. 4. 22. 23:28

폭풍 한가운데서

by David Wilkerson | April 17, 2013

“그러나 이제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바람이 반대로 불므로 파도로 인하여 요동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가시니, 제자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이다, 하고 무서워서 소리 지르거늘

예수님께서 즉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4:24-27).

 

제자들은 너무도 당황했고 갑작스럽게 압도되어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건 마귀가 하는 짓이야.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기적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어.” 다른 제자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야? 우리 중 누군가 죄를 지었나?

하나님께서 이 배를 타고 있는 누군가에게 화나셨어!”

또 다른 제자가 이렇게 질문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해? 그분께서 시키신 일을 우리가 하고 있잖아.

우리가 순종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이런 폭풍이 왔을까?”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시더라.”

 

예수님께서 폭풍 언저리에 서서, 그토록 사랑하는 그들의 모든 고통을 느끼면서,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기를 너무도 원하며, 곤란에 처한 자녀를 도와주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한 아버지로서 기다리시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러나 그분은 가장 사나운 폭풍이 임할 때까지는 그들이 결코 그분을 완전히 알거나

신뢰할 수 없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한계에 달했을 때 서야 그분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셨던 겁니다.

그 배는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나 폭풍이 배를 후려치는 것보다도 더 빨리

그들의 공포가 그들을 침몰시켰을 겁니다.

침몰에 대한 두려움은 물이 아니라 절망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분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유령)이다, 하고

무서워서 소리 지르거늘” (마태복음 14:26).

그들은 폭풍 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귀신—한 유령이었습니다.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란 속에서 예수님께서 너무도 가까이서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들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우리의 환란 가운데서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모두 직면하고 있는 위험입니다.

대신 우리는 유령을 봅니다. 두려움이 가장 절정에 달했을 때, 가장 어두운 밤에,

폭풍이 가장 광폭할 때, 바람이 가장 요란히 불며 절망이 엄습해올 때,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 가까이 오셔서 폭풍의 구원자, 환란의 주 되시는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주께서 큰물 위에 앉아 계시나니, 참으로 주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앉아 계시는도다” (시편 29:10).
 

우리는 오늘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by David Wilkerson | April 16, 2013

한 사람이 들었던 주님의 음성으로 인해 수백만이 믿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땅에 쓰러져 들으매 한 음성이 있어” (사도행전 9:4).

바울로 개명이 된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도 구원자의 음성이 자기에게 들릴 수 있도록 자신을 허용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 가니라… 또 한 음성이 그에게 나서” (사도행전 10:9, 13).

한 사람이 그분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고넬료의 집과 함께 온 이방 민족이 하나님 왕국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시편 95:7). 천국으로부터 듣는 것을 배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지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리도록 기다리는 대신, 우리는 상담자나 심리학자에게

먼저 달려가고, 책자를 읽는다든지 태잎을 들으면서 그분으로부터 무언가 듣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한 지도자를 따르기를 원하고 미래를 위한 보장을 원하며,

확실한 방향의 조언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소수 그리스도인만이 주님께 어떻게 나아가서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지를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한 번 더 흔들기를 원하십니다.

온 우주는 성령의 역동 하심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마라. 땅에서 말한 자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더더욱 피하지 못하리로다.

그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흔들었거니와 이제는 그분께서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아직 한 번 더 흔드노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2:25-26).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 음성이 다시 한번 들릴 것이다.

듣는 자들은 이 땅을 흔들 것이다. 하늘과 땅이 움직일 것이다.

내 음성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그것이 바로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경고입니다.

 “문을 열어라. 나로 하여금 네 은밀한 기도의 방으로 들어가게 하라.

내게 말하고 또 내가 너와 대화하게 하라. 나와 교제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에 다가오는 유혹의 때로부터 내가 너를 보호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전”

by Gary Wilkerson | April 15, 2013

“그리스도의 승전”은 초대교회 교부들이 예수와 그의 대속에 대해 묘사할 때

사용하곤 했던 라틴어입니다.

대강 번역하자면 “우리의 승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50대 50의 확률에서 적을 물리쳤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싸움에서 이겼다.” 그러나 우리의 적이 구척장신일 때, 그를 꾸짖었지만,

더 강하게 진격해 올 때, 우리의 모든 자원이 고갈 났을 때, 그리고는 마침내 두 손 들고서

 “제가 더는 할 수 없습니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곳에 네가 있구나.”

 

대개 구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은 영적 진리로서가 아닌 도덕적 지침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예를 들면, 요나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큰 곤란을 당하게 될 것이다”는 교훈으로 가르쳐집니다.

 

우리 대부분은 주일 학교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담대하고 용감하라”는

교훈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다윗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문제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어떤 이스라엘의 병사도 골리앗과의 일대일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용감한 용사조차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 싸움을 할 때 용맹과 담대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골리앗과 대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어렸고 아직 병사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나타났을 때 갖고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형들에게 줄

빵과 치즈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달랐던 점은 그 싸움이 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의 조롱을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날 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 주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게서 네 머리를 취하고…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온 땅이 알게 하겠고, 또 주께서 칼이나 창으로

구원하지 아니하심을 이 모인 모든 무리가 알게 하리라.

전쟁은 주께 속한 것인즉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시리라” (사무엘상 17:46-47).

 

영적 승리는 결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자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다윗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그분은 어떤 마귀도 저항할 수 없는 권능으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절망을 해결하십니다.

그날 골리앗은 전혀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 싸움이 주님의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말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의 몸인 형제사랑의집
글쓴이 : 형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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