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구원에 관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또 무관심하거나 게으르다면 그것은 성도들의 영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떤 나라들 보다도 믿음이 뜨겁고 열심이 있습니다.
신앙이 뜨거운 나라일수록 이단들도 득세를 합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이단들은 기존 교인들보다 대체로 더 열성적이고 성경지식도 해박합니다.
그 열성만큼은 우리들도 본받아야 하겠지만 그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구원론에 대한 결정적 오류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진리라고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장에 나가는 군인이 군화 대신 운동화를 신고 군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철모가 아닌 모자를 쓰고 나간다해도 얼마든지 승리하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알이 없거나 총이 고장 났거나 총의 분해 조립이 잘못되어 있는 상태에서 적과 일대일로 만난다면 살아 돌아오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누군지 좀 몰라도, 모세와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사람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도, 성경을 많이 읽지도 못하여 지식이 부족할지라도, 찬양을 좀 적게 할지라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해 잘 모르거나 구원에 대한 정확한 진리를 못 깨달아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거나 비진리에 미혹되어 있다면 우리의 구원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진리에 입각하여 그것을 바로 전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가르치고 그대로 실천하는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은 정말 복받은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정통이라 자부하는 교회들이 정말 구원에 대한 진리를 바르게 전하고 있는가하는 의문은 누구든지 한번은 가져보았을 것입니다.
진리를 올바르게 전하는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이 많이 퇴색되어 있거나 빗나가고 있는 교회들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비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면 장님이 장님을 따라가다가 구덩이로 같이 빠지는 형상이 되고 맙니다.
한국은 각교단들의 교리가 조금씩은 다르며 성경말씀 못지 않게 자기들의 교리를 중요시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성경 말씀을 전하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 중에 어떤 교리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왜곡된 내용도 있을 것이며 그것을 참진리인양 전하고 있는 교회들도 분명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동안 기존교회에서 잘못 전하여져서 우리가 잘못 알고 그것을 구원의 참 진리인양 의심치 않는 것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알아서 깨닫고 돌이킨다면,
그동안의 믿음생활에 있어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기에 이 시간 그러한 비진리들을 전부는 모르지만 아는 것 중에서 생각나는 것만을 간단히 이시간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처음 교회에 등록을 하여 얼마동안 다닌 후 어느 정도 교회생활에 적응을 하면 목사님과 장로님들 앞에서 교칙대로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데 담임 목사님이 시키는대로 따라 하면 쉽게 됩니다.
대충 그 내용을 보면 나는 죄인이며 그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구원 받은 천국백성이 되었다라는 것이 그 주된 내용입니다.
물론 우리는 위의 내용을 하나 하나 그대로 따라하게 되고 나중에는 입술로 이 모든 것을 시인했으니 우리는 구원 받았다라고 확신을 시킵니다. 더불어 구원 받은 것을 절대 의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이 확정이 됩니다.
우리들은 거의가 이러한 고백으로 구원은 받은 걸로 알고 있으며 목사님이 확신을 주기에 별로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절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등등 바울서신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한국교회는 초창기 선교사들이 들어 왔을 때 주로 미국의 남부 장로교의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들 장로교는 칼빈의 교리를 많이 따르기에 성경의 여러 말씀 중에서 주로 믿음만을 많이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믿음을 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그 단어 앞에 성경 원본에도 없는 “오직” 이라는 수식어를 집어 넣게 되므로 우리 한글 성경은 원어 성경과는 다른 “오직 믿음”이라는 말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모든 교단들 중에서 특히 장로교는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입술로 머리로 믿음을 고백하므로 모두가 구원은 받은 것으로 대부분 의심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으로써 “산데만 주의”라는 이단의 가르침이 있는데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은 받기에 그 다음에는 순종하지 않아도 또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라는 식의 논리로 많은 잘못된 사상을 교회에 심어 주어 지금까지 이단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얼마전에도 세월호 사건을 일으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ㅇㅇ파도 근본 교리와 가르침이 잘못되었기에 이러한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합니다.
그들은 다른 이단들과 마찬가지로 교주의 가르침과 교리를 믿고 따름으로 구원은 무조건 받은 것이며 확신해야 하고 절대 의심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죽을 죄를 저질러도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 무효가 될 수 없으며 의심을 하면 무조건 믿음 없는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자기들로 인해 희생이 되었어도 크게 죄책감을 못 느끼는 양심이 마비된 사람들이 그 선원들 중에는 있었습니다.
ㅇㅇ파 종교인들은 구원은 이미 받았고 천국은 무조건 가는 것으로 확신하기에 그들에게는 거룩한 삶이 따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ㅇㅇ지는 성경을 주로 비유풀이로 해석을 하고 요한 계시록을 많이 인용합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믿음에 따른 순종이나 회개나 거룩한 삶등은 별로 강조하지 않기에 세상과 구별되고 성품이 변화된 사람들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직 자기 교주의 명령대로 기존 교회의 교인들을 ㅇㅇ지로 끌어들이는 것만이 그들의 상급이요 구원 받는 길이기에 무슨 술수와 거짓과 속임을 써서라도 십사만 사천명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천주교는 선행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따르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착하고 의로운 일들을 많이 하므로써 그 공적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물론 다른 교리도 있겠으나 세상적인 선행을 구원의 조건에 포함하는 신자들이 많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WCC(세계교회 협의회)가 많이 침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지부가 있으며 여러 정통교단이 그 산하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종교는 평등하며 그들과 우리는 서로 연합되어야 하고 오직 예수가 아닌 모든 종교에는 그들 나름의 구원이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가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적그리스도가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각 시대마다 그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 가르침대로 써내려간 것이기에 우리의 머리와 지식으로 그 모두를 이해 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묵상하며 그 말씀이 의도하는 깊은 뜻을 잘 아시는 목사님들의 인도함을 받아야 우리가 올바른 믿음의 길을 잘 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신학을 전공하여 지식적으로 말씀을 연구한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깊은 계시적 말씀과는 거리가 있기에 우리가 그 가르침을 지식으로만 따라간다면,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기에는 부족하고 미흡한 점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권능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어지는 레마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두루 갖춘, 영에 속한 자라야 그 자격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한 번 구원 받으면 그 구원이 절대 취소될 수 없다고 하는 교회들이 없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로 우상을 섬겨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모두 죽게 되었을 때, 모세는 자기 이름을 기록하신 책에서 지울지라도 그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장면이 출32:32에 나옵니다.
이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라는 것을 뜻합니다.
계3:5에 사데교회에서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도 그 이름을 지울 수가 있다는 가정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27에서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구원이 취소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구원 받은 것이 취소가 될 수 있다라는 글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데 다시 그 약속이 취소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구원의 정확한 개념을 잘못 파악한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구원은 한 단면만을 보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구원의 개념을 이해를 해야 비로소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구원을 구원파들과 같이 어떤 이루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그것을 확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구원은 그 과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만이 아닌 구원의 좁은 길을 외치는 것이며 그 기난 긴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함과 자기를 부인하는 삶으로 십자가의 길이 나오는데 이러한 이루어가는 긴 삶이 없고는 우리에게 절대 구원이 따라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구원은 한 번 받은 후에는 반드시 그것을 계속하여 이루어가는 긴 과정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우리는 성화라고 합니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을 밟지 않고는 천국에 입성하는 영화를 절대 누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일부 한국교회가 이러한 준비하는 과정을 무시하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그 삶은 세상을 향한 방종의 삶으로 대부분이 나아가고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만을 통하여 오는 것이 진리이기에 우리 믿음생활의 방향과 초점은 오직 예수님께로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교회들이 오직 예수님께로만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오직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의 주변에 대한 것들 즉 교회 건물, 전체 공동체, 전도회나 부서별 모임, 부흥, 교제, 사회참여, 봉사등등 수도 없이 많은 모임과 행사에 그 목적과 중심을 두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열심있는 행위를 하므로써 그 댓가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이것은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에 매인 바리새인들의 믿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예배와 기도모임에 충실하지 않다거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변의 일들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결국은 우리 각자가 예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교회를 누가 가장 원할까요. 당연히 마귀들이 원하고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소원해질수록 점점 세상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에 세상의 온갖 인본주의와 유혹이 밀려옵니다.
결국은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복락과 성공을 추구하게 되고 그 배후를 마귀들이 주도하고 세상이 주는 달콤함과 쾌락으로 우리들을 넘어뜨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구원에 대한 바른 진리를 전하려면 회개와 십자가와 절제와 자기를 부인하는 희생의 삶을 외쳐야 하는데,
이것을 타협 없이 바로 전한다면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그 중심은 세상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의 불만과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가면 그러한 교인들의 목사님에 대한 거부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이제는 교회에서도 목사님들이 자신있게 이러한 진리를 외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목사님들이 교인들의 수준과 요구에 맞춰 타협할 수 밖에 없으며 그들의 요구에 맞게 달콤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번영신학만을 주로 전합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등등의 기분 좋은 말로 위로를 하며 성도들을 안심시킵니다.
이러한 예배를 끝내면 그 나머지 시간은 각종 모임과 행사로 분주합니다. 당연히 성도들이 깨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종교적이고 명목상의 신자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어떻게 우리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진리의 말씀들이 그들의 관심을 끌 수가 있겠으며 그들이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서, 열심히 교회는 다니지만 형식에 치우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가 나아가고 있는 믿음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진실한 회개를 했는지,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지, 참으로 거듭났는지, 구원의 좁은 길인 성화의 과정을 내가 걷고 있는 것인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지, 매일같이 나 자신을 부인하는 삶인지, 정말 예수님의 신부인지,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지, 주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는 사람인지, 매일같이 마음에 되새겨야 하는데...
저부터도 이러한 마음과 삶에 너무나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기에 너무나 부끄럽고 사실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주님 보시기엔 너무나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저희에게 부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 두드리고 간절히 찾는 자에게 그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길 이 시간도 간절히 원합니다.
성령영성기도원 글쓴이 : 초록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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