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잊혀진 가방이 있지 않을까? 평생 한 번 가볼까 싶은 해외여행을 위해 마련했다가 차마 없애지는 못하고 벽장 한 구석에 고이 모신 여행 가방이거나, 처음 출근하던 며칠은 들고 다녔는데 언제부턴가 부끄럽다며 손에서 멀어진 싸구려 가방이거나, 버린 적은 없지만 그 존재를 기억해본 적도 없는 어떤 가방이거나, 그리하여 간혹 그 안에 넣어둔 그 시절의 옷가지나 꿈의 흔적이 불쑥 나타나 현재의 자신이 당황하게 되는, 그런 가방 말이다. 인생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게 잊혀진 가방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 가방을 어디서 어찌 다시 찾을까?
탤런트 권오중은 영국의 한 선교단체가 불스트로드의 허름한 지하실에 몇 십 년간 보관해온 어느 선교사의 가방을 열어보던 날, 잊고 있던 자신의 가방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기독교 로드 다큐멘터리(Christian road documentary) 영화 <잊혀진 가방>의 한 장면이기도 했다.
권오중은 7월 29일 극장에서 개봉되는 <잊혀진 가방>(제작: 파이오니아21, 감독: 김상철, 제공배급: ㈜마운틴픽쳐스)에 가수 이현우와 동반 출연했다. 권오중은 14년가량 집사(예닮교회)로 섬겨온 ‘중견 신자’인 반면, 이현우는 최근 기독교에 입문한 ‘초보 신자’. 관심과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두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이 영화를 통해 권오중 집사 같은 ‘오래된 신자’들은 잊어버렸던 가방을 다시 기억해내고, 이현우처럼 새로운 신자이거나 아직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각자가 품어야 할 인생의 가방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유익이 있을 거라고, 목사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은 말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다시 찾아야 할 ‘잊혀진 가방’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가방이 잊혀진 이유와, 권오중 씨가 동참하게 된 계기는?
제가 작년에 김상철 목사님이 제작한 기독 단편영화 <이층집 남자>에 출연했는데요, 이 영화도 그것처럼 7분에서 10분을 넘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가만 두지 않으시고 2시간 가까운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주셨네요.
<이층집 남자>를 끝내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목사님이 잊혀진 가방에 대해 말해주시는데, 제 마음이 확 끌렸습니다. 영국에 가면 어느 선교단체 건물 지하에 주인을 잃은 가방이 있다는 겁니다.
길게는 70년 가까이 보관해온 그 가방들 속에 선교사 개인에게는 소중하지만 선교지로 떠날 때는 불필요한 개인 물건들이 들어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다 들고 갈 수 없어 선교단체에 맡겨놓은 것인데, 현지에서 순교하거나 평생 헌신하기로 해 돌아오지 않은 선교사들의 가방이라는 것이지요. 그 주인 잃어 먼지 쌓인 가방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가보기로 한 겁니다.
영국에 따라가기로 결정한 다음 생각해보니 제가 많은 은혜를 받게 될 것 같았습니다. 나 혼자보다 주변의 누군가와 이 은혜를 함께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마침 앞집에 사는 현우 형에게 권했더니 뜻밖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당시에는 라디오 진행도 하고 있었고 아기도 태어난 무렵이어서 같이 가리라고 상상을 못했는데, 형수님 집안이 크리스천이라서 온 가족이 밀어주었어요. 형도 처음에는 자기가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저는 갔다 오면 분명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돌아오자마자 드라마 섭외를 받더라고요.
꼭 그래서만 아니라, 현우 형이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신앙 문제들에 답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우 형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가 초보신자나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유익할 것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선교사들의 삶이 기독교에 대한 오해나 궁금증을 많이 풀어줄 것이거든요. 영화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등장하는 현우 형의 고백은 일반인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을 겁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권오중 씨가 직접 선교사의 가방을 열어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가방 안에는 연인과 친지와 나눈 편지뭉치와 상패와 졸업장 같은 인생의 소중한 추억이 가득하던데요, 그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그 가방을 본인 허락 없이는 열어보지 못한다는 원칙 때문에 처음에는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우리 일행은 은퇴 간호선교사인 헬렌 로즈비어(Helen Rosevere)를 방문하여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선교사로서의 삶과 헌신의 의미를 듣는 시간을 갖게 되지요.
영화는 그 외에도 필립과 낸시 우드(Philip & Nancy Wood) 선교사 부부, 한국인으로서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한 이인응, 이순환 부부 등을 따라가면서 사람의 의도와 계획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정한 감독은 하나님이라고 저희들은 말하곤 했지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선교사들이 말로 다 표현 못할 고초를 겪어가며 선교에 헌신한 이유가 바로 복음 때문이었고, 그 소명을 위해 자신이 가진 세상의 모든 것을 두고 갔다는 사실이 큰 감동을 줍니다. 말하자면 그 가방 안에는 그들이 소명을 위해 내려놓고 간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던 것이지요. 그러니 선교사의 가방을 열어보았을 때의 감동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가 힘드네요.
이 영화에는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주로 등장하는데요, 특히 기억나는 선교사가 누구입니까?
제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기니비사우의 이인응 선교사님이 먼저 기억나는데요, 그 분은 원래 화가였고 아프리카 원주민이 땀 흘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2009년 언더우드상 수상자이기도 하지요. 이 영화 포스터에 인용된 아프리카 사람의 얼굴이 사실은 이 선교사님의 그림이에요.
그런데 그의 그림들은 결코 한가하게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선교사님에게는 원래 딸 ‘두제’가 있었는데, 2004년 7월 꽃다운 스무 살 나이에 현지 강도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딸의 목숨을 강탈해간 사실이 너무 괴로워,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오려고 딸의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에 딸이 쓰던 크레파스를 발견합니다. 그 크레파스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선교사로서 소명을 회복하고 사역의 열매를 맺어간다는 이야기가 눈물겹게 전개되지요.
영화 촬영 과정에서 만난 다른 선교사님들 이야기도 해주시죠.
현우 형과 함께 만나러 간 헬렌 로즈비어는 1925년 영국의 명문가 출생입니다. 캠브리지(Cambridge)에서 의학 공부를 했는데 대학생 때 회심하여 1953년 콩고 선교사가 되었다고 해요. 1차 사역기간에는 간호사 훈련이 절실하다고 보고 병원과 의료훈련학교를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2차 사역기간 중이던 1964년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군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료 선교사의 순교를 직접 목격했다고도 말씀하더군요. 지금은 노년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알리는 사역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필립과 낸시 우드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선교사가 되어 현재도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인 콩고 버니아에서 병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인 필립은 캠브리지 의대를 졸업한 외과의사이고 낸시는 캐나다 출신 가정의학과 의사이지요. 제가 열어본 가방이 바로 이 부부의 것이었습니다. 1972년 그들이 두고 간 가방을 38년 만에 열어보았을 때의 감동이란….
그 때 자신이 잊고 있던 가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셨지요?
저는 아내 덕분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된 계기는 아이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일입니다. 어렵게 아이를 얻었는데 90퍼센트 치료불가능이라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큰 고통 속에서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평생 희귀 난치병 아동과 장애우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요. 2001년에 그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응답해주셨어요. 지금 제 아들은 건강합니다.
약속대로, 그동안 저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하나님 일이라고 해서 돕고 참여하다보니 상처도 받고 (연예인으로서) 이용당했다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하나님과의 약속에서 멀어지기 시작할 때가 작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잊혀진 가방>을 찍으면서 저에게서 잊혀질 뻔한 가방을 다시 찾게 된 것이지요.
저는 그것이 제가 하나님께 오래전 서원했던 그것,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소명의 가방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건데요, 그래서 혹시 선교사님들도 저처럼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지만 힘이 들어 외면하고 잊어버린 가방 같은 것이 있지 않으실까 싶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한결같이 잊혀진 가방 같은 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자기들이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습니다. 가방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자기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 말에 큰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잊혀진 가방’이란 그들의 소명이라기보다, 선교사로 떠날 때 두고 온 그들의 자아나 과거에 불과한 것인지 모릅니다. 제가 열어본 가방 속에는 선교사로서는 필요하지 않았을 그들의 과거뿐이었거든요. 저는 반대로 제가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잊혀진 가방처럼 잊어버리려 했던 거고요.
그래서 선교사의 잊혀진 가방을 열었을 때 자신의 가방을 다시 찾았다고 말한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선교사들은 가방 속에 트로피와 상장이나 자신을 내세울 만한 경력을 두고 떠났지만 우리들은 자기를 내세우기 위한 것들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가방을 열어보니 굳이 선교사로 가지 않아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을 다 남겨두고 떠나신 걸 알게 됐어요.
저 같으면 저를 알리고 내세울 만한 것은 다 싸가지고 갔을 것 같은데,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가신 걸 보니 은혜가 되더군요. 제가 찾아야 할 저의 ‘잊혀진 가방’은 그 분들처럼 소명이 담긴 저 ‘자신’이라는 가방일 것 같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선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담임목사님이 4년 이상 목회해온 좋은 교회 놔두고 의사인 사모님과 어느 날 불현 듯 마다가스카르 오지로 떠나신 일이 있어요. 그게 좀 충격이었고,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하고 나니 어렴풋이 나도 선교사역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교사들을 만나보니 너무 행복하게 살고 계셨고, 세상에서 이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죠. 아내에게 제 생각을 말했더니 좋다며 추진해보라고 하더군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단기선교사역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잘 따르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수 이현우 동반인터뷰
권오중 씨 제안을 따라 영국에 다녀오셨는데 소감 한 말씀.
저는 믿음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이라 궁금한 것도 많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기독교의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의문도 품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따라가면 ‘속성’으로 믿음을 가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기대만큼 큰 변화가 제 안에 일어나지 않아 실망도 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 편집된 영상을 보고 나니 내가 많은 것을 얻게 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습니까?
이인응 선교사님을 미술전시장에서 만나 뵙기도 했지만, 도대체 그 생지옥 같은 곳에서 아이를 잃어가면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그런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초보 수준의 믿음이지만 영화 찍기 전에는 더했죠. 그러나 그동안 만난 선교사들을 통해 깨닫고 느낀 점이 많고요, 함께한 오중이나 감독님, 스탭들을 통해서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제 삶에 외로움, 고통, 아픔이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 하고 오랫동안 고민을 많이 해왔는데, 영화에 참여한 이후로 그 해답을 얻은 것 같아 굉장히 기쁩니다.
현우 씨에게 잊혀진 가방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제게 잊혀진 가방은 우선 ‘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수십 년 살아오면서 찾으려고 애써봤지만 보이지도 않고,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던 인생 문제의 해답을 찾아 헤맸는데, 조금 윤곽을 보게 된 것 같아요. 아내가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제게 늘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했고, 그냥 남편 교회 나오라고 ‘꼬시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결혼한 후부터 객관적으로 이해 안 될 정도로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오중이 집 앞에 살게 된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제게 잊혀진 가방이 무엇인지 또 생각해보니까, 제 가방은 겉으로는 ‘치장된’ 가방이었지만 그 속은 늘 비어 있었던 것 같아요. 진정한 답을 찾지 못해 그랬던 걸 텐데, 이제는 그 속에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깨닫게 되었으니까, (이 영화가) 제게는 굉장히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전도할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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